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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오랜 숙제와도 같던 책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지금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출간되고 있지만, 예전 제목은 <지와 사랑>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와 하일러,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데미안을 비교하게 됩니다. 골드문트는 싱클레어와 비슷하고, 나르치스는 꼭 데미안 같습니다. 그리고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소설 모두 유서깊고 전통있는 수도원이 배경입니다. 헤르만 헤세도 어린 시절에 수도원 기숙학교에 다녔던 적이 있었어요. 헤르만 헤세가 있었던 마울브론 수도원(Maulbronn Closter)은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마울브론 수도원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의 배경으로 유명해져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해요. 코로나가 끝나면 저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수도원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마울브론 수도원
출처: 위키백과

하여튼, 소설 속에서 골드문트와 나르치스는 매우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르치스가 사상가에 분석가라고 한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에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대립적이며서 동시에 보완적인 존재입니다.

“해와 달이, 바다와 육지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듯이,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어. 우리 두 사람은 해와 달, 바다와 육지처럼 떨어져 있단 말이야. 우리의 목표는 상대방의 세계로 넘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는 거지. 상대받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존중해야 한단 말이야. 그리하여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지.” - 나르치스

하지만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름다운 외모와 고귀한 성품을 지녔고,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한번은 나르치스가 골드문트의 마음을 열기위해 따뜻한 말씨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네들의 고향은 대지이지만 우리들의 고향은 관념이야. 자네 같은 사람들의 위험은 감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이지만 우리들의 위험은 진공의 공간에서 질식하는 것이야. 자네는 예술가이지만 나는 사상가일 뿐이야. 그리고 자네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다면, 나는 황야에서 깨어 있는 셈이지. 나에게는 태양이 비치고 있으나 자네에게는 달과 별이 비치고 있고, 자네의 꿈속에서 소녀가 나타나지만 나의 꿈속에는 소년이 나타난다네.” - 나르치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의 젊은 영혼의 성질과 운명을 꿰뚫어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골드문트는 누구보다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르치스 선생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야릇한 우정관계를 지속합니다.


어느날 골드문트는 약초를 캐러 수도원 밖으로 나갔다가 우연히 떠돌이 집시 여인인 리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와 사랑의 환희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수도원을 떠날 결심을 하고 나르치스에게 그 동안의 고마움을 말하고 작별 인사를 합니다. 그렇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이별을 하게 됩니다.

아, 모든 것이 얼마나 기이하고 야상야릇했던가! 얼마나 기묘하고 혼란스러웠던가! 이번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넘쳐흐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막 피어나는 사랑에 도취되어 친구를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것도 친구가 단식과 철야 기도로 온몸이 초췌해져 있는 때가 아니었던가. 친구는 오직 정신에만 봉사하고, 온전히 하느님 말씀을 받드는 종이 되기 위하여 자신의 젊음고 가슴과 감성을 십자가에 못 박아 제물로 바치고 순종을 요구하는 엄격한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데 말이다. 친구는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송을 늘어뜨린 채 드러누워 있다가, 마치 죽은 사람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이내 분명한 의식을 되찾아 다정스런 친구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그리고 여자와의 사랑에 빠져 있는 친구에게 귀를 기울여주었고, 참회와 수련 시간 사이에 얼마 안 되는 휴식 시간을 기꺼이 바쳤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것은 자아를 버린 완전한 사랑, 온전한 정신적 사랑이었다. 오늘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서 맛본 사랑, 감각의 앞뒤를 분간하지 못했던 사랑의 유희와는 얼마나 판이한 사랑인가! 그렇지만 둘다 사랑이었다.


하지만 집시 여인 리제는 남편에게 가야한다면서 골드문트를 떠나버립니다. 그 후 골드문트는 극심한 외로움과 배고픔을 느낍니다. 골드문트는 이 외로움을 자유로운 방랑 생활 속에서 만난 많은 여인들과의 사랑으로 채웁니다. 그는 한 곳에서 하루 이상 머루는 적이 없었고 사랑을 나눈 여인을 소유하려고 붙잡지도 않았습니다.


골드문트는 어느날 밤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한 밤중에 등불을 들고 집 안주인이 아기 낳는 것을 도와주게 되고, 생전 처음으로 해산하는 광경을 보게됩니다. 그날 그가 본것은 진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으로 찡그린 여인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고통의 얼굴표정과 쾌락의 얼굴 표정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해산하는 광경을 보았다. 놀라움과 불타는 시선으로 산모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진통의 비명을 지르며 고통 속으로 나자빠진 여인의 얼굴을 불빛 아래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예기치 않은 어떤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찡그린 여인의 표정은 사랑의 절정에 다다른 여인의 얼굴 표정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중략…)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두 가지 표정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 뒤로도 그는 자유로운 방랑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눕니다. 그리고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 유대인 학살 등 삶과 죽음의 처절한 현장도 경험합니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두번의 살인도 저지릅니다. 유명한 조각가 니콜라우스의 제자가 되어 요한 사도 상(像)을 조각하기도 합니다. 그 사도상은 나르치스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골드문트는 그대로 선 채 입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에 귀를 기울이듯 그윽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사도(使徒)…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환하게 웃는 미소 속에는 차분함과 외경심이 가득 담겨 있었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헌신의 삶을 사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경건함이 녹아 있었다. 이런 모습의 형상에서 거는 자신의 소년 시설 스승이며 친구인 나르치스를 떠올렸다. (…중략…) 그 영혼은 순수 자체였고, 조화 그 자체였다.


소설 마지막에서 와서 골드문트는 늙고 쇠약해진 몸으로 결국 수도원에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고는 나르치스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나르치스… 언젠가 한 번은 죽을 텐데, 당신은 죽음을 어떻게 맞을 건가요? 당신한테는 어머니도 없잖아요. 어머니가 없으면 사랑도 할 수 없고, 어머니가 없으면 죽을 수도 없을 텐데…” - 골드문트


이 글은 스팀잇에서 작성되었습니다.